분류

2016년 8월 30일 화요일

1. 고교 교육에 절망했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학교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입니다. 어렸을 적 문학, 음악, 과학에 주로 흥미를 갖고 있던 자신의 특기 분야 중 한 종목인 과학의 평점이 낮아지기 시작했던 시기도 바로 고등학교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저 개인의 성적이 나빠졌다고 해서, 해당 교육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었던 부분이 결코 저 개인에게만 있었던 부분은 아니라는 변명을 하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96년 '연합고사'라는 시스템을 통해 학교를 배정 받게 되었는데, 대전시 '동구'에 산다는 이유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대전시 외곽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학교까지 집에서 30분 이내 거리에서 통학을 하던 저에게 한 시간 반이라는 거리는 매우 멀고, 고된 통근 지옥을 선사하였고, 당시 가난했던 집에 통학 용 봉고차를 타기 위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당시 예고나, 공고를 지망했던 제가 '연합고사'를 보게 된 이유는 홀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공고나, 상고나 예고를 가는 것을 보느니 내가 죽어버리겠다' 했던 부모님의 압박에 맞설 수 없었던 것은 저 자신의 나약함과, 독립성 결여에서 온 것이겠지요. 여기까지는 물론 제 책임이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이른바 '학교 부적응자'였습니다. 고등학교를 들어간 이래로 줄 곳 새벽 5시에 일어나 어머니를 도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도시락을 싸고, 학교에 가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학교는 1시간 30분 거리, 야간 자율 학습을 할 경우 11시 30분에 집에 들어와 씻고 나면 12시, 개인의 시간이란 것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환경은 학교라는 것에 흥미를 잃게 했고, 이는 곳 성적의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1. 모든 교과의 암기 과목 화 

성적의 하락으로 이어지게 했던 또 다른 것을 이야기 하자면,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틀어, 학교 선생님들이 난이도가 낮은 수학 문제를 직접 풀이 해가며, '이렇게 하면 쉽게 풀 수 있다'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셨고, 저는 그 풀이를 이해해 가며 사소한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항상 80점대 평균 성적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선 선생님이 문제의 풀이를 하지 않으시고 '이 공식은 이렇게 하면 답이 이거니까 외워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학이 수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닌 암기 과목이 되어버렸습니다. 순간 멍해진 저는 수학이라는 과목의 선생님이 마술사 처럼 느껴졌습니다. '뿅에 뿅 넣고 뿅 하면 자 이게 답이야'라니... 선생님 이걸 어떻게 계산해 내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수학에서 외워야 하는 기호와, 수식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까지 외워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수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 수학의 교육 수준이 높다 한들, 기본적인 물리 규칙 하나 풀어내지 못하는 상태로 대학생, 직장인이 되어 버린 그들은 대체로 산업 현장에 나가서 '학교에서 뭐 배웠냐?'라는 소리를 듣기 일수입니다.

수학을 포기기로 마음먹은 날, 과학을 같이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듣게 된 과학 시간에서 수학 때 부족했던 설명을 듣기를 기대했지만, 선생님께서 '이 공식은 수학 시간에 배웠으니 넘어갈게'라는 짧고 명료한 한마디로 학과 과정에 대한 설명을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야유 했고, 한번 더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이어서 선생님은 '잘 모르겠으면 수학 선생님께 물어봐'라고 다시 한번 문제 풀이를 거부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저런 선생님들께 내가 졸업까지 무엇을 배울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까지 일 년의 과정 동안 배우던 책의 두 배가 되는 교과서의 진도를 연간 수업 시간 내에 마치려면 교사들에겐 아이들에게 주입 식 암기 위주 교육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뭐 다른 교육도 대체로 비슷한 주입 식, 암기 식의 교과서 읽기, 특정 부분 외우기 이외에 특별한 교육을 3년간 받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 여유 있던 선생님들이 사회문제와 역사적인 이슈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종결되었음을 고교에 입학 한지 두 달 만에 확실히 채감 할 수 있었던 계기입니다. 

2. 촌지문제 

최근 2년 새 부쩍 늘어난 뉴스 중 하나가 교권의 추락인데, 저희 때는 선생님이 나름대로의 권위를 갖추고 인정 받았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시작된 부정 부패들이 정상적으로 해결되지 못했고, 이에 불만을 갖고 성장한 학생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교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문제가 발생 하고 있지 않나 합니다.

당시 대다수의 선생님까진 아니지만, 담임 선생님이셨던 분들 중 약 20% 이상이 촌지를 받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 했고, 학교에선 일부 선생님들이 노골적으로 촌지를 주는 집과, 주지 않는 집의 아이를 차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반에 전교 꼴지 학생의 집은 잘 살아서 촌지를 줍니다. 그리고 당시 못살았던 아이들의 집에선 촌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차별을 떠올리자면 이렇습니다. 전교 꼴지 학생이 순위를 조금만 올려도 수업 시간에 교단에 불러내서 칭찬하고, 수시로 면담해주시고 아이를 북돋워 주십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에게 친근한 말 한번 걸어 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반대로 촌지를 안준 집의 아이인 저에게는 해당 교사가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담임을 연임 하면서 선생님의 확인이 필요한 특별 전형 원서에 싸인을 해주지 않아서 원하는 대학 원서를 작성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이런 행태를 보면서 자라온 학생들이 교사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을 리가 없지요. 물론 요즘 '사람들이 제 자식 귀한 줄만 안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건 어느 세대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교권의 추락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 교사의 부정 문제가 오랫동안 방치되다 보니, 곪을 대로 곪아 이제 터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3.강압적인 야간 자율 학습

야간 자율 학습은 현재도 문제입니다. 하루 종일 나무로 된 단단한 책 걸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만 해도 엉덩이에 종기가 날만큼 힘든데, 우리나라의 인문계 학교는 야간 '자율 학습' 이라는 단어로, 학생들의 진정한 자율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뭐 다른 나라엔 야간 자율 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명칭이 야간 자율 학습인데 이것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율 학습을 하지 않으려는 학생에 대한 제제를 하는 교사가 적지 않습니다.

자율 학습이 맞는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람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환경에 강압적으로 머무르게 될 때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우울증과 상실감 같은 심적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개인적인 음악 공부로 자율 학습을 면제 받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의 강경한 대응에 야간 자율 학습을 어쩔 수 없이 2개월 간 참여해야 했는데 당시 2개월 만에 우울함과 답답함을 동반한 알 수 없는 감정에 선생님을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곤 '선생님 저 더 이상 야간 자율 학습 하면 미칠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더 이상 야간 자율 학습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야간 자율 학습을 2개월 밖에 하지 않았지만, 야간 자율 학습과, 보충수업, 방학 보충수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던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좋았는가 에 대해 묻는다면 답변은 확실하게 '아니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수험생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취업반'으로 변경하여 수업을 전혀 듣지 않은 상태에서 본 수능이 1년 넘게 학교에서 보충수업과 야자를 하며 머물렀던 친구들 중 1/2보다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보충수업에 참여하고, 야간 자율 학습에 참여했음에도 성적마저 낮은 학생들에 대한 보상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강압적으로 참여했던 야간 자율 학습의 시간에 대해서 어떠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허비하고 흘러갔을 뿐, 보다 생산적이거나,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강압적으로 뺏어간 학교에서 성적을 보장 받을 수 없다면, 학생들은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어디서 받아야 하는 것 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낀 몇 달 간의 야간 자율 학습은 강압에 의해 하다 보니 마치 학생인 것이 죄인 것 같았습니다. 매일 어쩔 수 없이 학교라는 감옥에 가야 하고, 그곳에 갇혀서 청춘의 시간을 허비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곳.

그곳은 지옥이었고, 그곳은 감옥이었습니다.

그런 끔찍한 경험을 후대에 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4.경제에 대한 실질적 교육의 부재

경제는 우리 생활과 항상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개념의 정립도 중요하지만, 경제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마련해주는 것이 공교육의 의무가 아닌가 합니다. 약 20년 동안 고등학교 경제는 한결같이 가르칩니다. 경제의 역사를 말이죠. 하지만 경제는 역사에 의해서 반복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흐름을 파악하거나, 가치 판단의 기준점을 마련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님비, 핌비 이런 용어가 알고 있으면 잘난 척 하는데 도움이야 되겠지만, 이것 만으로는 현재 일어나고 이는 많은 경제적 이슈에 대해서 분석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기왕 교육을 하려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런 저런 경제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이 되었는지 등의 구체적인 사례와, 각종 방안들에 대한 결과, 그리고 학습을 기반으로 한 현재 경제 이슈에 대한 토론을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사고의 틀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경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사회에 진출해 막대한 손해를 보거나, 부채에 시달리게 될 수 도 있습니다. 지금도 주변에 보면 자산과 부채의 개념적 차이조차도 재대로 적립하지 못한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이 국영수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어 져야 하는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우는 것은 경제의 역사와 용어 뿐인 지금의 아이들이 걱정 됩니다.

5. 고교 교육 편 마무리 

위에 여러가지 문제를 나열했지만, 한국 교육에서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수많은 것을 배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 할 수 없는 상태의 '암기기계' 같은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앞으로의 교육은 그저 듣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교육으로 전환 되어야 합니다. 수동적인 로봇을 양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리고 스스로 학교 교육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학생에게 '불량아'라는 낙인을 찍기 보다는 스스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자신이 결정 한 것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게 될 테니 까요.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30년이 조금 넘은 짧은 인생에 가장 크게 남는 후회는 자신이 선택해서 실패한 것 보다. 선택의 기회를 빼앗겨 선택할 수 없던 환경에 대한 원망 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절망했다!
1.고교 교육에 절망했다.
2.대학 교육에 절망했다.
3.고용 시장에 절망했다.(상)
4.고용 시장에 절망했다.(하)
5.술독에 빠진 사회에 절망했다.
6.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친 사회에 절망했다.
7.무능함의 연결고리가된 직장에 절망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