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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9일 목요일

로지텍 울트라 씬 마우스 T630 6개월 사용기

로지텍 T630을 구매하게 된 계기는 듀얼OS 태블릿 때문이었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태블릿 사용자 환경이 매우 편하지만, 윈도우의 경우 터치할 수 없는 조그만 녀석들이 너무 많다. 태블릿의 해상도는 1280이나 1950 을 지원하는데 그에반해 사이즈가 너무 작은 윈도우의 작업표시줄이나, 창닫기 버튼 같은 녀석들은 손으로 제어하기엔 터치가 잘못되는 경우가 너무 많고 불편했기 때문.

이점은 아직도 윈도우가 모바일 os를 표방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윈도우 덕에 마우스가 필요하지만, OS가 바뀔때 마다 매번 휴대하고 있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다시 연결하는 귀찮음을 없애고자 이런저런 부가장치들을 검색하던 중  찾게된 것이 로지텍의 T630이다. 가격대는 조금 있다. 7만5천원정도 선이고, 요즘은 벌크제품 세일로 4만5천원 정도. 디자인은 아래와 같다.



상세 스팩은 로지텍 홈페이지 참조

직접 사용해본 장단점 
1.사용 장단점
일단 특징은 마우스의 휠을 없앤 대신에 퀵액션을 몇개 넣어서 사용편의성을 확대했다. 두손가락으로 왼쪽으로 드래그하면 이전페이지, 오른쪽으로 드래그하면 이후 페이지 로 넘어가는 것 같은 액션은 여러면에서 상당히 편리하다.

하지만 스크롤링에 있어서는 마우스의 방향에 따라 좌, 우, 위 아래 스크롤링을 할 수 있는데, 마우스를 사용하다보면 얇아서 안정적인 그립감이 없기에 살짝 삐딱하게 잡게되는 편이다. 이럴경우 스크롤링이 잘못되서 페이지 전환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인터넷 환경에서 문서를 작성하다보면 이게 조금 골치아프다. 저장을 다 못했는데 페이지를 빠져나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혹은 웹툰이나 장문의 글을 읽다가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는 과정에서도 페이지 전환이 발생한다. 이부분이 작동상 유일한 단점 이랄까?

2.기능 장단점
그리고 무엇보다 블루투스 장치가 2개나 달려있고, 버튼조작 만으로 서로 다른 장치나 OS에 바로 접근이 가능하다는것도 매우 큰 장점이다. 듀얼OS 사용시 이것만큼은 정말 엄청나게 편하다.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이거 하나로 블루투스 싱크시간 30초를 아끼는 셈이니 그만큼 가치가 있다. 게다가 충전식이니 베터리를 별도로 구매할 필요도 없고, 베터리 수명이 다할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단점이라고 하면 상단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충전단자가 하단에 있다. 키보드는 한번 충전하면 2달,3달은 너끈히 사용하는 반면, 마우스는 자주 사용할경우 2주밖에 가지 않는다. 따라서 마우스는 충전을 생각보다 자주 하는 귀찮은 기기인데 충전단자를 바닥에 두면 베터리를 충전하면서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부분은 간혹 베터리가 방전될때마다 한숨을 쉬게 만든다. 옆면이나 뒷면에 연결할 수 있게 단자를 두었다면 충전하면서도 사용할 수 있었을텐데...

부수적으로 여기에 추가되는 불편함이 또있는데, 충전상태를 알수없다. 마우스를 충전기에 연결할경우 로지텍 마크 밑에 바늘구멍 하나로 녹색 불이 들어오는데 일반적으로 충전중일때 빨간불이 들어오는걸 표준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녀석은 오직 녹색불이다. 얼만큼 충전되었는지 혹은 얼만큼 베터리가 남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런 불편사항을 로지텍도 알고있는지 지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
로지텍 셋포인트 (윈도우와 맥 버젼밖에 없는 듯 하다. 요즘 대세는 안드로이든데 -_-+)
소프트웨어 설치를 마침을 누르기 전 한가지 유의할 사항이 있는데 크롬 브라우저 사용자들을 위한 스크롤링을 부드럽게 해주는 플러그인을 여기서 설치할 수 있다.
설치 마침을 누르기전에 확장프로그램 추가를 누르면 아래 화면으로 넘어간다.
이곳에서 우측 상단의 녹색 버튼을 누르면 그간 좀 뻑뻑했던 스크롤이 좀 더 부드러워 지는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로지텍 셋 포인트에서는 내가 불편사항을 느꼈던 부분을 대체로 해결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예를들자면 가로 스크롤 기능 같은 유용하지만, 내게는 오류를 일으키는 기능에 대한 해결(가로 스크롤을 아예 제외해버리면 된다.)

마우스 베터리가 적을때 미리 알려주는 기능 (기왕이면 작업표시줄 아이콘에도 표현됐으면 하지만 그건 욕심인가보다) 


그리고 윈도우 바탕화면 보기와, 시작메뉴 호출 같은 기능등 몇가지를 설정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소프트적인 기능의 불만은 모두 사라지고 베터리 충전단자의 위치에 대한 불만만 남게 되었다.

이만하면 나름 완성도를 제대로 갖춘 마우스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음.. 아직은 아무리 검색해도 국내 시장에는 두개의 블루투스 칩을 장착한 녀석이 없는 만큼. 기능면에서도 타 제품들보다 우월한 것도 사실이고. 좋다. 합격!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windows10이 업데이트후 프로그램 인스톨 오류 해결법


윈도우즈10을 사용하는데 9월 업데이트가 된 이후 엑티브엑스를 설치하려고 하면 한문으로 나온다. 그리고 오류를 배출하고 하면서 여러 기능이 안된다. 그래서 이곳저곳 구글링 해보니. 대체로 언어팩을 설치하라고 하는데 난 이미 한글 언어팩으로 설치가 되어있고, 사용하는데 문제가 그동안 없었다. 따라서 무언가 기초적인 문제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설정을 살펴보다 보니 일부 프로그램 실행시 한문으로 실행하게끔 되어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해당 설정이 안될경우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없다. TouchEnweb_Installer 같은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이 설치가 안되기 때문이다. 태블릿으로 자주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기에 이게 안될경우 불편함이 좀 심한편이어서 혹시나 같은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공유해본다.

일단 해다 오류사항은 설정 변경을 한 이후 사라졌기 때문에 딱히 스크린샷을 첨부하지 않는다. 엑티브 엑스 설치시 '????? ???? ????' 같은 메시지가 나오거나, 한문으로 된 오류메시지가 나오면 아래항목을 따라하면 된다.

1. 윈도우의 시작버튼을 눌러 제어판을 실행한다.
(태블릿 키보드에 스크린샷 버튼이 없어 이부분은 스크린샷이 불가능)

2.제어판에서 시계, 언어 및 국가별 옵션 을 선택한다.

3. 국가 또는 지역을 선택한다.
4. 관리자 옵션 탭을 선택하여 시스템 로켈 변경을 클릭한다. 

5.현재 시스템 로켈을 선택하여 한국어로 변경한다. 
6.확인을 누르면 시스템 재시작을 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시스템 재시작을 하면 이후 오류에서 해방될 수 있다.


2016년 9월 23일 금요일

4.고용 시장에 절망했다.(하)

지방의 소규모 전문대학에 배울게 없었던 이유로 학업을 중도 하차 하게된 저는 2004년 취업시장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문대 재학중이라는 신분으로 이곳 저곳에 서류를 제출해 보았지만, 무려 50여곳의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 서류를 제출했고, 그중 서류심사에 통과해 연락이 오는 곳은 약 3곳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소기업 할것없이 이력서를 제출해본 결과는 정말 참담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확율이 무려 90%나 되었으니까요. 이유는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아무런 스팩도, 학업성취도 하지 못한 학생. 스스로를 믿는 자만심이 가득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많은 위험도를 제공하지 않았나 합니다. 또 한번 '어른들의 말이 맞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따라서 눈높이를 낮추고 '어디든 받아만 주기만 하면 탁월한 실력을 핵심인재가 되어주마' 라던 생각은 조금씩 수그러들었고 '받아만 주십쇼 사장님' 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등지면서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과, 동일 학군의 동료들과 비교하며 갖게 되었던 우월감은 어디에도 없게 되었습니다.

일단 낮아진 눈높이에 따라 면접을 했던 소규모 업체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세업체, 좁다란 사무실 게으른 사람들... 처음 접한 회사의 풍경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열의는 없고,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하며,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면 한없이 늘어져있는 상사들의 모습은 제가 바랬던 직장의 모습과는 너무 괴리감이 컸기에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게 되었지요.

하지만 얼마 가지않아 그 무력감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입사한지 불과 3개월차부터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지요. 들어오는 일감이라곤 사무실 인원의 급여를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고, 10여명밖에 되지 않는 회사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고 놀고 계신분이 둘이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손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무실 분위기도 좋을 리 없고, 할일 없는 관리자는 걸핏하면 회의다 뭐다 하면서 하루 2, 3시간씩은 꼬박꼬박 잡아먹는 것을 보다보니 '저놈은 할거없으면 회의 하자고 하는 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급여가 들어오지 않다보니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사람을 붙들어 놓으려는 노력이 사기꾼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보나마나 얼마 안가 부도가 날 것 같다는 생각에 4개월만에 퇴사하고, 다른 업체로 옮기길 세번정도 하다보니 일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4대보험이 300인 이하 사업장은 의무가입이 아니었던 터라 경력 증빙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의 연속이었지요. 그렇게 1년간 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렘 제작 업체를 전전하다보니 영세업체의 생존율이 상당히 낮다는 것을 깨닫고 1년후 직종을 변경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비파괴 검사라는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광주에 있는 학원에서 한달간 합숙교육을 받았습니다. 방사선 촬영 산업기사 자격증 필기에 합격 한 후 해당 직종의 한 중견기업에 취직해서 대전인근에서 일을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곳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방사선은 방사능 보다 노출 위험도가 낮은 편이지만, 그래도 문재는 있습니다. 방사능 물질을 가지고 투사 촬영을 하는 것이 방사선 촬영 인지라 일단 방사능 물질을 안전용기 속에 휴대해야 해서 무거운 장비를 항상 들고다녀야 합니다. (약20kg최소) 이건 뭐 운동도 되고 근육도 많이 생기니 좋습니다. 하지만 방사선의 경우 자주 쏘이게 되면 몇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렇다보니 방사선 농도에 따라 안전거리를 적절히 확보해야 하는 안전수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수칙 대로 작업을 할경우 건물을 짓는 속도가 늦어져, 그만큼의 비용 손실이 발생하므로, 작업은 대부분 안전수칙은 무시된 채로 진행되게 됩니다. 방사선에 자주 노출되게 되면 발생하는 현상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의 변화입니다. 혈소판이나 백혈구가 감소한다던가, 혹은 정자수가 감소한다. 이런 것은 외관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멀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썩어들어가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 이지요.

지키지 못한 안전수칙은 약 6개월 후 몸에 나타났습니다. 얇은 종이에 머리카락 두께로 베인 상처가 아물지 않고 2주를 넘어서고 있던 것이지요. 혈소판 부족으로 지혈이 되지 않고 지속 적으로 피가 났습니다.

 규정대로의 유급휴가 2주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개인사정을 이유로 바로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한국은 아직도 안전 분야에서 참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안전 장구류들이 비싸다는 이유로 개인들에게 1:1 지급이 되지 않는다거나, 혹은 상사가 귀찮다고 '야 뭐 그런것 까지 체크해' 라고 말하는 한마디에 안전수칙이 무시되는 일이 허다하니까요. 현장에 써있는 '안전제일' 이라는 문구는 표어일 뿐입니다.

손을 베었던 종이 한장이 고마운 면도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가지 않아. 비파괴 검사 업종에서 백혈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사례들이 뉴스에 자주 나온걸 보면서 '내가 아직도 거기서 일했다면...'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비파괴 업종에서 퇴직한 이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무언가를 이룩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라는 뜬금 없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계획.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 등 여러가지를 말이죠.

결론은 다시 소프트웨어 업계로 진출을 하고 싶었습니다. 업무시간에 딴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니 역시나 목적성을 가지고 자신의 것을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키울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창작이라던가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분야가 좋겠다. 등등의 여러 생각들이 종합되어서 나온 결론입니다.

하지만 경력도, 학벌도 없는 상태에서 소프트웨어 업계에 돌아가 봤자. 또다시 오늘내일 하는 신생회사 들을 전전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유사업종 경력을 쌓아 기사 자격을 취득하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지방 전문대에서 약속했던 졸업까지의 학점을 제공하지 않고, 마지막 학기에 교양과목 2개에서 출석 미달을 이유로 F학점을 준 덕에 전문대를 졸업하지 못한 재적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최종학력을 고졸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도 한몫 했습니다.

4대보험이 지급되는 서버와 네트워크 설비를 하는 업체에 들어가 약 4년간의 경력을 쌓고 소프트웨어 업계로 진출해서 지금은 프리랜서로 있습니다. 뭐 난척좀 하자고 한다면. 같이 일했던 분들이 일자리를 소개해주시는 터라, 어려움도 없고. 개인적으로 구상한 솔루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들을 늘려나갈 만큼 여유도 있습니다. 야근을 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독립하기까지 약 7년간의 직장생활은 절망적인 직장 문화와의 끈임 없는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의 직장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차차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사회에 절망했다!
1.고교 교육에 절망했다.
2.대학 교육에 절망했다.
3.고용 시장에 절망했다.(상)
4.고용 시장에 절망했다.(하)
5.술독에 빠진 사회에 절망했다.
6.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친 사회에 절망했다.
7.무능함의 연결고리가된 직장에 절망했다.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3.고용시장에 절망했다.(상)

한국 고용 시장에 양질의 일자리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3년-99년 외환위기가 한국에 닥친 이후라고 생각됩니다. IMF 이후 급격히 붕괴한 한국의 거품 경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 중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인건비를 줄여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방안 이었죠.

정부 주도의 방안으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고 있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파견 근로 제도 입니다. 직접 고용할 경우 주어야 하는 인건비의 절반 정도만 지불하고 동일한 인력 고용 효과를 얻음으로써 기업에는 이득을, 취업자에게는 절망을 주는 제도입니다. 국가 부도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라의 경쟁력을 재고 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던 것 같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15년 간 진행되고 있는 인생 불황기의 시작이 되는 계기 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아웃소싱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었으나, 현재로서는 불법 파견이 가장 주된 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웃소싱 본래의 의미는 특정 생산품에서 난이도가 낮은 공정에 대해 다른 공장에 하청을 보내는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공정을 분할하는 거죠.

공정을 분할한다는 것은 초기 기획 단계부터 자리 잡지 못하면 막대한 돈이 드는 작업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회사가 제조, 포장, 유통까지 모든 것을 담당했다가. A 제품을 생산해서 B 포장 업체에 보내어 포장을 하고 제품을 출하한다고 하면, A 회사는 구매했던 생산 포장 설비를 중단해야 하고, 공장의 규모도, 구조도 변경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해당 설비 변경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B 업체에서 A 업체로 인력을 파견해서 근무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형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불법 파견입니다.

B 회사의 직원으로 소속되어 A 사의 공장에서 근무하고, 심지어 A 사의 직원과 동일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B 사의 직원이라는 이유로 급여는 절반만 주고, 사원 복지 및 급여 체계를 다르게 관리하는 형태로 불법 파견을 아웃소싱 인 것처럼 속이는 겁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번 맛본 인건비 절감이라는 달달 한 사탕을 다시 놓아버릴 이유가 없습니다.

불법 파견은 현재는 사회 문제의 대표 주자가 되었으며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꺾어 버리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시작된 불법 파견을 근절 시킬 수 있는 것은 정부의 끈임 없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노력은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하여 단체 대응을 하는 방법 이외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 받고 싶다면 노조에 들어라'라고 발언한 것과 완벽하게 대립 되는 논리로 한국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무 노조 경영을 수 년간 지속 할 경우 노사 문화 우수 기업으로 표창하고 있습니다. 앞의 글을 클릭해서 기사로 넘어가 보면 분명하게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노동자가 권익을 얻는 행위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고용 시장이, 노동 시장이 절망적인 이유는 노동자의 혹은 구직자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역할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뉴스에서는 마치 정부가 노동 시장 개혁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자주 등장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고용불안을 촉진하는 요소가 정부 자체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점을 알지도 못하고, 인정 하지도 않는 집단에 무슨 개혁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투표를 잘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곳에도 있습니다. 불합리한 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한 표를 내다 버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국 사회에 절망했다!
1.고교 교육에 절망했다.
2.대학 교육에 절망했다.
3.고용 시장에 절망했다.(상)
4.고용 시장에 절망했다.(하)
5.술독에 빠진 사회에 절망했다.
6.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친 사회에 절망했다.
7.무능함의 연결고리가된 직장에 절망했다.

2016년 9월 5일 월요일

대전 자전거 여행 - 유림공원, 은평공원

대전에서 자전거 길을 타고 유성으로 가다보면 많은 공원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유림공원과 은평공원의 사진을 좀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갑천 자전거 길이 좋은 이유중 하나는 자전거길만 따라가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공원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갑천을 따라서 신탄진으로 가면 끝에서 만나는 로하스 공원이라던가, 유성으로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한밭수목원, 엑스포공원, 그리고 유림공원과 은평공원 등 갑천변에 있는 공원수만 해도 제가 가본곳만 벌써 6곳이나 되네요; 

유림공원과 은평공원은 다리를 하나 사이에 두고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은평공원은 아마 93-96년 사이에 지어졌을 것 같고요. 오래전에 지어져서 그런지 규모에 비해 조금 볼거리가 부족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유림공원과의 차이라면 뭐랄까, 은평공원 내에는 인접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인지 체육시설이 조금 마련되어 있다는것? 정도가 장점이 되겠네요

아래는 은평공원 전경입니다. 사진은 클릭하면 커지는거 아시죠? ㅎㅎ








유림공원은 2007년 정도? 부터 공사를 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았는데, 정확하게 개장한 일자는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공사 기간이 제법길었습니다. 그리고 그 긴 공사 기간만큼 나름대로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놓은 곳 이기도 합니다. 역시 공원 조성도 트랜드 같은게 있지 않나 합니다. 자그마한 호수와, 꽃밭도 있고,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보니, 가족나들이나,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유림공원 전경입니다.









유림공원에는 터널을 두개 조성해놨는데요, 하나는 장미꽃을 키우는 중이고, 한쪽에는 박과 작두콩을 키워놓았습니다. 근데 이게 사람들이 많이 따가서 그런가 ㅎㅎ 한쪽 터널은 매번 갈때마다 출입금지 테이프가 붙어있네요.

조그만 호수 주변에는 오리도 살고있고, 언덕위에 닭장도 있고 ㅎㅎ 요즘엔 도심에서 닭도 구경하기 힘든 놈이라 그런지 가는 공원마다 닭장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요.

유달리 무더웠던 올 여름도 어느덧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 몇번 왔다고 선선해진 날씨와 높아진 하늘. 자꾸만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하는 계절이지요. 뭐 멀리 갈 필요없이 돗자리 하나 들고 근처 공원에 나드리 한번 가보시는 것 어떠세요?

2016년 9월 1일 목요일

2.대학 교육에 절망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 특별 전형 원서에 서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간단하고 불합리한 이유 덕에, 1999년 저는 이름도 처음 듣는 전문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타 지역에 있는 국립대에 합격했지만, 타지 생활과 생활비 조달의 문제 때문에 해당 학교에 진학을 포기하고, 대전의 한 전문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진학한 전문 대학에서 저는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그중 배울 것이 거의 없음에 절망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취미로 배운 프로그래밍이 적성에 맞아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문과에서 공학 계열 학과로 전환된 것은 저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고등학생이 1년 간 학원에서 배운 것 보다 못한 전문 대학의 수업 내용은 곧 저를 절망으로 빠트렸습니다. 학교에 머무를 이유가 점점 작아지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내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던 전문 대학의 교육은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전문 대학을 들어가기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지도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전문 대학 졸업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문 대학 졸업생은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고 현장에 나아가 실무를 일찍 습득하여 회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어쩌구 저쩌구'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은 이 말은 내게 매우 달콤했습니다. 특히 달달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는다' 라는 부분이었는데요, 애초에 학업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지루하고 오랜 기간 다니는 4년재 보다는 보다 사회에 일찍 나가고 싶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제 인생에서 약 10년 간의 불황기를 맞이하게 되는 결정 이 되었습니다.


1. 전문성이 없는 학과 교수 

진학했던 전문 대학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97년 국내 인터넷 보급이 활성화 되면서 IT붐이 일기 시작하고, 한국에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자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전문 대학, 4년제 대학교 할 것 없이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하는 학과들이 신설되기 시작했고, 전문성 있는 교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갓 시작된 시장에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웠고, 제가 다니던 전문 대학에서는 비 인기 과목 교수에게 담당 과정을 프로그래밍으로 전환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전문성을 가진 교수가 아니라 프로그래밍 초보인 분이 Visual Basic(이하 VB)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 강의를 하게 되었고, 학원에 다닌 1년보다 더 기초적이고, 부족한 수업이 진행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이래로 당시 여러 버그가 있었던 VB는 책 만으로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여, 오류를 수정하거나 지도할 수 없는 교수를 대신해 수업 실습 진행의 전반에 제가 지원을 하는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미 초급 프로그래머의 수준을 획득한 사람이 생 초보를 가르치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홈페이지 강의를 하는 교수는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지식도 없으셔서 가르친다고 하기 보다는 책을 읽는 수준이셨고, 이분이 지도 교수라는 부분에 한번 더 절망했습니다. 

이러한 행태 덕에 저는 역시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이 조금은 맞아 들어갔지요. 학과에서는 나름대로 인기 있는 학생이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배우기 보단 헌신 한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자 저는 군대 입대를 위해 학교를 휴학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아무리 썩은 대학이라도 군대 다녀오는 2년 2개월이면 많이 개선되어 있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군대에서는 '인터넷 조교'라는 보직을 받게 되면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주 업무는 신병과 제대를 앞둔 병장들에게 '인터넷 검색사'라는 생소한 민간 자격증 취득을 도와주며 교육을 하는 것이었는데, 인터넷 교육을 신병이 받으면 갈굼 당하니 대체로 신병은 오질 않고, 병장은 차라리 내무반에서 잔다고 오지 않아 매우 한가한 보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할게 없던 저는 프로그래밍과 당시 유행했던 포토샵 사진 편집 프로그램과 플래시라는 웹 애니메이션을 취미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 2개월을 보내고, 다시 제대해서 대학에 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2.유행처럼 바뀌는 학과 

대학에 복학하기 한 달 전 학교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니던 학과가 없어졌으니, 웹 마스터 과 나 방송 영상 학과로 전환 하셔야 합니다.' 

군대 좀 갔다 왔다고 학과가 없어지다니, 그것도 97년에 신설된 학과가 2003년에 없어졌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신설 학과가 6년밖에 못 간 이유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전화에 대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도 교수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지도 교수는 해당 학과가 앞으로 유망할 줄 알았으나, 실제 교육 후 취업이 잘 되지 않고, 웹 쪽이 더 유망하기에 웹 마스터 과를 신설하고 해당 학과를 폐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수의 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군 입대 전 제가 경험한 한 학기에 기반해 생각해보면 전문성이 결여된 교수에 의해 초급 기술도 마스터하지 못한 학생들이 양산 되었고, 고용 시장에서 해당 학과 학생들이 외면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웹은 컴퓨터 공학과는 달리 소규모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생겨나고, 망하는 상황이어서 고용 시장이 훨씬 얕고 넓어, 졸업생을 취업 시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았던 것 이지요. IMF이후 줄 곳 취업률에 목을 매던 학교 측에서는 당연한 결정 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학의 교육 과정이 유행처럼 바뀌는 이른바 '캐쥬얼'화가 진행되었던 이유는 당시 정부가 IMF로 발생한 경제 인구의 10%에 육박한 실업자 100만 시대의 타계 책으로, 취업률이 높은 대학을 우수 대학으로 선정하고, 해당 대학에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세웠고, 각 학교들이 정부 지원금을 타기 위해 유망 학과를 신설하거나, 비 인기 학과를 통폐합 함으로써 전문성이 떨어지는 학과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지방의 소규모 대학이나, 전문 대학교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국 대부분 대학교에서 이런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실로 15년 간 대학 교육의 평균적인 질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반적인 기업에선 '좋은 대학 나와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돌게 되었으며, 구직 하는 청년들에게 스팩 경쟁을 과도하게 요구하게 되는 사태에 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현재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학도 표면적으론 비영리를 추구 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언제 어느 곳에나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과 2주 전에도 이화여대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화여대에서 총장이 학위 장사를 한다고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던 것이 그 예입니다.

정부에서는 돈을 지불해서 경기 활성화, 청년 취업 활성화, 혹은 평생 교육을 실현한다고 하지만, 실상 대학들은 눈 먼 돈 줍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에서 지출되는 우리의 세금이 눈 먼 돈 취급 당하며 여기저기 뿌려지는 듯 합니다.

3.공부하지 않는 학생들

드디어 복학한 전문 대학에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해소되면서 대학 들어가는 것이 쉬워져서 그런 것 인지, 나라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취업이 쉬워진 것 인지 혹은 그나마 없던 수준이 더 떨어진 것 인지 학생들 중 50%는 강의 시간에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입대 전에 보이던 '잘 하진 못해도 열의에 차있던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눈에 보이게 시간 때우기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부쩍 늘어있었습니다. 학과 특성 상 컴퓨터를 사용하는 실습이 있을 때 면 어김없이 '카트라이더'의 부~욱 부~욱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교수가 해당 학생을 방치하는 바람에 직접 나서서 스피커 좀 끄라고 해야 수업을 집중 할 수 있는 정도로 학교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런 학생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다 보니, 교수들은 각 수업 교과의 진도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고, 학습이 늦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과도한 배려로 군대 시절 2주면 독학했던 책을 한 학기 동안 절반 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전공 필수 과목의 대부분을 이미 군대에서 독학 했던 저는 장학금으로 졸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학교에 복학 했지만, 이젠 장학금도 필요 없고, 졸업장도 필요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사회 경험을 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굳게 되었고, 지도 교수와 면담 후 취업자 처리를 통해 적정 학점을 주기로 약속 하고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훗날 해당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지도 교수가 취업률에 목을 맨 나머지 프로그램 개발자가 아닌 '택배 기사' 혹은 '음료 회사 영업 사원' 의 자리를 학생들에게 권유했고,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지도 교수의 수업에 수강 신청을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학과와 관련도 없는 회사에 알선해 주는 것이 정상적인 취업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원하는 취업률은 단순히 취업 했다, 안 했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4.대학 교육 편 마무리 

아직도 많은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을 목적으로 신설 학과를 만들거나, 연구 과제를 수행 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진학률이 87%에 육박하다 보니 공부하지 않는 대학생들도 늘어 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이러한 대학, 대학생들의 문제는 교육에 대한 신뢰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존 우리나라의 한 축을 담당하던 고용 형태였던 학연, 혈연, 지연에 의한 고용과 승진이 이어지면서,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의 질을 떨어뜨려 경쟁력을 약화 시키는 현상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과연 제가 종사하고 있는 IT에만 있는 걸까요?

앞으로 대학이, 그리고 대학생이 변하지 않는다면 20대 백수 백만 시대는 계속 지속 될 것 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확대될지도 모르지요.

대체 언제가 되어야 돈벌이에만 급급한 대학들이 진정한 교육 기관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무척 회의적입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낸다고 학교를 없애면 일부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놔두면 더 썩어서 양질의 교육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 입니다.

한국 사회에 절망했다!
1.고교 교육에 절망했다.
2.대학 교육에 절망했다.
3.고용 시장에 절망했다.(상)
4.고용 시장에 절망했다.(하)
5.술독에 빠진 사회에 절망했다.
6.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친 사회에 절망했다.
7.무능함의 연결고리가된 직장에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