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 특별 전형 원서에 서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간단하고 불합리한 이유 덕에, 1999년 저는 이름도 처음 듣는 전문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타 지역에 있는 국립대에 합격했지만, 타지 생활과 생활비 조달의 문제 때문에 해당 학교에 진학을 포기하고, 대전의 한 전문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진학한 전문 대학에서 저는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그중 배울 것이 거의 없음에 절망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취미로 배운 프로그래밍이 적성에 맞아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문과에서 공학 계열 학과로 전환된 것은 저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고등학생이 1년 간 학원에서 배운 것 보다 못한 전문 대학의 수업 내용은 곧 저를 절망으로 빠트렸습니다. 학교에 머무를 이유가 점점 작아지게 되었지요.
그렇다면 내게 절망감을 안겨 주었던 전문 대학의 교육은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전문 대학을 들어가기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지도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전문 대학 졸업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문 대학 졸업생은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고 현장에 나아가 실무를 일찍 습득하여 회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어쩌구 저쩌구'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은 이 말은 내게 매우 달콤했습니다. 특히 달달하게 느껴졌던 부분은 '단기간에 전문성을 갖는다' 라는 부분이었는데요, 애초에 학업에는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지루하고 오랜 기간 다니는 4년재 보다는 보다 사회에 일찍 나가고 싶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제 인생에서 약 10년 간의 불황기를 맞이하게 되는 결정 이 되었습니다.
1. 전문성이 없는 학과 교수
진학했던 전문 대학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97년 국내 인터넷 보급이 활성화 되면서 IT붐이 일기 시작하고, 한국에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자가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전문 대학, 4년제 대학교 할 것 없이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하는 학과들이 신설되기 시작했고, 전문성 있는 교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갓 시작된 시장에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웠고, 제가 다니던 전문 대학에서는 비 인기 과목 교수에게 담당 과정을 프로그래밍으로 전환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전문성을 가진 교수가 아니라 프로그래밍 초보인 분이 Visual Basic(이하 VB)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 강의를 하게 되었고, 학원에 다닌 1년보다 더 기초적이고, 부족한 수업이 진행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이래로 당시 여러 버그가 있었던 VB는 책 만으로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여, 오류를 수정하거나 지도할 수 없는 교수를 대신해 수업 실습 진행의 전반에 제가 지원을 하는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미 초급 프로그래머의 수준을 획득한 사람이 생 초보를 가르치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홈페이지 강의를 하는 교수는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지식도 없으셔서 가르친다고 하기 보다는 책을 읽는 수준이셨고, 이분이 지도 교수라는 부분에 한번 더 절망했습니다.
이러한 행태 덕에 저는 역시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이 조금은 맞아 들어갔지요. 학과에서는 나름대로 인기 있는 학생이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 배우기 보단 헌신 한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자 저는 군대 입대를 위해 학교를 휴학하기로 결정 하였습니다.
'아무리 썩은 대학이라도 군대 다녀오는 2년 2개월이면 많이 개선되어 있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군대에서는 '인터넷 조교'라는 보직을 받게 되면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주 업무는 신병과 제대를 앞둔 병장들에게 '인터넷 검색사'라는 생소한 민간 자격증 취득을 도와주며 교육을 하는 것이었는데, 인터넷 교육을 신병이 받으면 갈굼 당하니 대체로 신병은 오질 않고, 병장은 차라리 내무반에서 잔다고 오지 않아 매우 한가한 보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할게 없던 저는 프로그래밍과 당시 유행했던 포토샵 사진 편집 프로그램과 플래시라는 웹 애니메이션을 취미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 2개월을 보내고, 다시 제대해서 대학에 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복학하기 한 달 전 학교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니던 학과가 없어졌으니, 웹 마스터 과 나 방송 영상 학과로 전환 하셔야 합니다.'
군대 좀 갔다 왔다고 학과가 없어지다니, 그것도 97년에 신설된 학과가 2003년에 없어졌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신설 학과가 6년밖에 못 간 이유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전화에 대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도 교수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지도 교수는 해당 학과가 앞으로 유망할 줄 알았으나, 실제 교육 후 취업이 잘 되지 않고, 웹 쪽이 더 유망하기에 웹 마스터 과를 신설하고 해당 학과를 폐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수의 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군 입대 전 제가 경험한 한 학기에 기반해 생각해보면 전문성이 결여된 교수에 의해 초급 기술도 마스터하지 못한 학생들이 양산 되었고, 고용 시장에서 해당 학과 학생들이 외면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웹은 컴퓨터 공학과는 달리 소규모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생겨나고, 망하는 상황이어서 고용 시장이 훨씬 얕고 넓어, 졸업생을 취업 시킬 수 있는 확률이 높았던 것 이지요. IMF이후 줄 곳 취업률에 목을 매던 학교 측에서는 당연한 결정 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학의 교육 과정이 유행처럼 바뀌는 이른바 '캐쥬얼'화가 진행되었던 이유는 당시 정부가 IMF로 발생한 경제 인구의 10%에 육박한 실업자 100만 시대의 타계 책으로, 취업률이 높은 대학을 우수 대학으로 선정하고, 해당 대학에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세웠고, 각 학교들이 정부 지원금을 타기 위해 유망 학과를 신설하거나, 비 인기 학과를 통폐합 함으로써 전문성이 떨어지는 학과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지방의 소규모 대학이나, 전문 대학교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국 대부분 대학교에서 이런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실로 15년 간 대학 교육의 평균적인 질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반적인 기업에선 '좋은 대학 나와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돌게 되었으며, 구직 하는 청년들에게 스팩 경쟁을 과도하게 요구하게 되는 사태에 까지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현재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학도 표면적으론 비영리를 추구 한다고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언제 어느 곳에나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불과 2주 전에도 이화여대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화여대에서 총장이 학위 장사를 한다고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던 것이 그 예입니다.
정부에서는 돈을 지불해서 경기 활성화, 청년 취업 활성화, 혹은 평생 교육을 실현한다고 하지만, 실상 대학들은 눈 먼 돈 줍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에서 지출되는 우리의 세금이 눈 먼 돈 취급 당하며 여기저기 뿌려지는 듯 합니다.
3.공부하지 않는 학생들
드디어 복학한 전문 대학에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이비 붐 세대가 해소되면서 대학 들어가는 것이 쉬워져서 그런 것 인지, 나라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취업이 쉬워진 것 인지 혹은 그나마 없던 수준이 더 떨어진 것 인지 학생들 중 50%는 강의 시간에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입대 전에 보이던 '잘 하진 못해도 열의에 차있던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눈에 보이게 시간 때우기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부쩍 늘어있었습니다. 학과 특성 상 컴퓨터를 사용하는 실습이 있을 때 면 어김없이 '카트라이더'의 부~욱 부~욱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교수가 해당 학생을 방치하는 바람에 직접 나서서 스피커 좀 끄라고 해야 수업을 집중 할 수 있는 정도로 학교의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런 학생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다 보니, 교수들은 각 수업 교과의 진도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고, 학습이 늦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과도한 배려로 군대 시절 2주면 독학했던 책을 한 학기 동안 절반 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전공 필수 과목의 대부분을 이미 군대에서 독학 했던 저는 장학금으로 졸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학교에 복학 했지만, 이젠 장학금도 필요 없고, 졸업장도 필요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사회 경험을 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굳게 되었고, 지도 교수와 면담 후 취업자 처리를 통해 적정 학점을 주기로 약속 하고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훗날 해당 대학을 졸업한 동기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지도 교수가 취업률에 목을 맨 나머지 프로그램 개발자가 아닌 '택배 기사' 혹은 '음료 회사 영업 사원' 의 자리를 학생들에게 권유했고,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지도 교수의 수업에 수강 신청을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학과와 관련도 없는 회사에 알선해 주는 것이 정상적인 취업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원하는 취업률은 단순히 취업 했다, 안 했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4.대학 교육 편 마무리
아직도 많은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을 목적으로 신설 학과를 만들거나, 연구 과제를 수행 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진학률이 87%에 육박하다 보니 공부하지 않는 대학생들도 늘어 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이러한 대학, 대학생들의 문제는 교육에 대한 신뢰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존 우리나라의 한 축을 담당하던 고용 형태였던 학연, 혈연, 지연에 의한 고용과 승진이 이어지면서,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의 질을 떨어뜨려 경쟁력을 약화 시키는 현상까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과연 제가 종사하고 있는 IT에만 있는 걸까요?
앞으로 대학이, 그리고 대학생이 변하지 않는다면 20대 백수 백만 시대는 계속 지속 될 것 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확대될지도 모르지요.
대체 언제가 되어야 돈벌이에만 급급한 대학들이 진정한 교육 기관으로 다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부분이 무척 회의적입니다. 썩은 부위를 도려낸다고 학교를 없애면 일부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놔두면 더 썩어서 양질의 교육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 입니다.
한국 사회에 절망했다!
1.고교 교육에 절망했다.
2.대학 교육에 절망했다.
3.고용 시장에 절망했다.(상)
4.고용 시장에 절망했다.(하)
5.술독에 빠진 사회에 절망했다.
6.학연, 지연, 혈연으로 뭉친 사회에 절망했다.
7.무능함의 연결고리가된 직장에 절망했다.